몇 년 전 전국의 유명지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문화콘텐츠라는 눈으로 각 지역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참 안타까운 것은 대표적인 관광지인 유명 사찰도 그렇고 축제가 열린 장소들도 그저 옛 습관을 답습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었다. 플랭카드에 적힌 익숙한 안내문, 아스팔트로 일관된 보도, 정보 주기에 급급한 걷기길, 젊은이 취향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체험프로그램 등 헤아릴 수 없다.
그 중 단연 내 눈에 띈 것은 지방의 버스정류장이다. 일반적으로 버스정류장은 대중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기에 경유지에 대한 정보에 집중한다.
최근 들어서 바뀐 것은 많은 정류장들이 디지털 정보 메뉴판들을 부착해서 버스가 현재 어디를 경유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꽤 편리하다. 이것만 해도 사람들은 디지털의 혜택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많은 나라들을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버스정류장들은 과연 디지털의 나라를 느낄 수 있게 한 점에서 특색이 있다. 하지만, 국내 지방의 소규모 마을에 있는 버스정류장들은 여전히 아날로그이다.
놀라운 것은 일부 사람들은 버스정류장을 마치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들이 쉽게 자신의 쓰레기를 버릴 수 있지만, 문제는 쓰레기 수거 차량을 위해 쓰레기 더미를 버스정류장 옆에 놓을 수 있다는 편의 의식에 있다.
편의성과 감수성은 많은 경우에 상반된 의미를 갖는다. 편리성을 위해서는 버스정류장에 그 어떤 물건도 놓을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 버스정류장을 이용하는 외지인에게 오물 방치는 오랫동안 부정적인 지역 이미지를 남긴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의 버스정류장들은 다행히 그런 요인들은 없지만, 문화적 삶의 질과는 거리가 멀다. 이 버스정류장들은 수많은 광고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광고판을 던져 주고 있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몇 몇 지자체 버스정류장이 작은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행선지를 알리는 정보 옆에 남아 있는 공간을 활용하여 지역의 문화행사나 공동체 활동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작게나마 이 마을의 유래를 적어 놓기도 하고, 마을을 우연히 방문한 외지인에게 소개한 조그만 산에 대한 스토리는 이들에게 정감을 준다.
거창한 플랭카드나 구호 없이도 깨끗하게 청소된 버스정류장과 양쪽 벽면에 소소한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소개한 주민들의 정성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마을이라면 한 번쯤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주막에 들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었다.
어느 한 유럽의 도시 버스정류장은 디지털은 아니더라도 디자인에 있어서는 단연코 뛰어났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행선지 정보와 행선지에 따라 다른 색상을 입혔다. 물론 그런 버스정류장도 바람직하지만,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하다. 더구나 작은 도시와 마을로 가면 경유하는 버스가 많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기기보다는 정감 가는 문화콘텐츠 하나쯤은 만들었으면 한다.
버스정류장은 훌륭한 대중매체이다. 문화콘텐츠가 있는 버스정류장은 자주 이용하는 지역민에게는 자긍심과 지역정체성을 제공할 수 있다. 그것을 준비하는 지역민에게 자신의 거주지가 어떤 매력을 줄 수 있을 것인지 되돌아볼 기회도 줄 수 있다. 이런 버스정류장은 외지인에게는 결정 장애를 더 하게 하는 SNS보다 지역민이 찐(?)하게 자랑하는 문화유산을 소개받을 수 있어서 좋다.
원주는 문화관광 도시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대중매체에 소개된 원주의 볼거리도 중요한 정보이지만, 마을을 알리는 데에 대중매체 홍보는 역부족일 것이다. 소소하지만, 감성을 주는 문화콘텐츠는 지금의 버스정류장들과 우리 지역 주민들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줄 수 있을 것이다.
구문모 한라대학교 광고영상미디어학과 교수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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